우리 엄마는 학교에서 수백 명의 초등학생을 위한 밥을 짓습니다. 저는 날마다 메뉴를 골몰하며 요리하고요. 잘 나가는 식당의 주방에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주방 이모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손맛 좋은 요리사입니다.우리 엄마는 학교에서 수백 명의 초등학생을 위한 밥을 짓습니다. 저는 날마다 메뉴를 골몰하며 요리하고요. 잘 나가는 식당의 주방에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주방 이모라고 부르지만, 그녀는 손맛 좋은 요리사입니다.
횡성오일장

《시장산책》을 시작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삶 위에 올라탄 채 삽니다. 고달픈 인생입니다. 원래 버스에 타면 창밖을 응시하곤 했습니다. 움직이는 나무와 사람과 거처 없는 개를 구경하고 싶어서 지하철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요즘엔 버스 좌석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만든 짧은 영상을 보려고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움직입니다. 도대체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무언가에 몰두하는 척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오고만 것에 안도하는 순간을 의식하더라도, 딱히 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유는 무엇인지 자문하고 길을 잃은 삶에게 뭐라도 말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다지 수다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입술을 부딪히고 혀를 굴리면서 소리를 내 뱉고 싶은데 숨이 턱 막힙니다. 그러니깐 전 나름대로 신중하게 말하기 위해서 오래 고민하는데, 말소리가 몸 전체에서 공명하는 찰나를 기다려주는 소중한 이를 만난다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가끔은 눈치없이 모두의 질문이 끝난 후에 손을 번쩍 드는 사람이라는 고백을 빼놓기는 힘드네요.

글쓰기는 저를 기다립니다. 먹고사는 일에 지쳐서 연필을 들지 않는 날에도 훈수하지 않고요. 무엇을 지껄이든 그냥 냅둡니다. 글을 쓸 때에는 남을 의식합니다. 인기없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글을 올릴 때에도 얼마나 신경쓰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쓴 글에 누군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피해를 입진 않을까 걱정합니다. 누구나 비방을 하기 쉬워진 시대이잖아요. 잘못 적은 내 글이 데이터베이스 서버에 저장되어 평생 박제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미치겠습니다. 그렇다고 입술을 꽉 다물고 살 순 없습니다. 하루 아침에 입이 트여 이야기꾼으로 살아가게 될 수는 없겠죠.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거부하면서 몸에 새긴 이야기를 글로 적고 싶습니다. 산발적인 저의 글이 잠시 멈추고 싶은 사람에게 읽히길 기대합니다. 아작거리는 글을 한 움큼 베어물고 싶을 때 찾아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