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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레시피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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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파이
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
햇빛 속에 저 눈부신 천성의 사람들
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
갈라진 이 혀끝에는 맞지 않는구나.
잡초나 눈 속에 온몸을 사려감고
내 슬픔의 독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최승자 시인의 「자화상」 중 일부 (출처: 문학과지성사, 『이 시대의 사랑』)
눈길을 붙잡는 언어를 발견할 때가 있다. 마음을 맴도는 글자를 붙잡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소망한다. 걷거나 누워있거나 술을 마실 때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뒤를 밟는 글의 낌새가 느껴진다. 아니다, 글을 내가 따라가는 건가.
언젠가 여름, 나는 걱정에 휩싸였다. 누룩에 붙어사는 미생물이 활동하기에는 뜨거운 날씨였다. 삼양주를 빚고 마시기까지 삼 개월은 걸리는데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영영 못 먹을 것 같았다. 평소에 밥 지을 때 쓰는 것보다 더 비싼 멥쌀을 주문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전통주 교과서』는 쌀을 물에 담가 백 번을 휘저으라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얀 쌀뜨물은 다 버리고, 수분을 날린 쌀 알맹이들을 블렌더에 넣어 갈았다. 담백하게 쓰고 있지만 생난리를 쳤다.
쌀, 누룩, 물의 혼합물을 담은 커다란 병을 책장 밑 서랍장에 가뒀다. 술 빚기 좋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이스 팩도 넣었다. 이미 쏟은 노력을 생각하면 실패하면 안 되어서, 잡균이 번식해 술을 망치지 않도록 소독제도 왕창 뿌렸다. 술이 되었는지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조마조마했지만, 효소는 쌀의 전분을 분해해 당으로 만들고 효모는 그걸 먹고 자라나고 있다는 걸 작은 변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방이 고요해지면 병 안에서 소나기가 내린다. 정말 병 가까이에 귀를 대면 비가 저 멀리서 사락사락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술 냄새가 풀풀 난다. 완성될 즈음엔 버스에서 취객이 옆자리에 착석한 듯한 애매한 냄새 때문에 괴로웠다.
가끔 뚜껑을 열어 내가 생각한 맛에 도달했는지 확인했다. 진주에서 온 앉은밀 누룩은 어떻게 이런 맛을 만들어내는 걸까. 누룩 이백 그램을 얻는 건 예나 지금이나 쉽다. 아주 가끔 시장에 있는 각가지 콩을 파는 곡물 가게에 가면 엿기름은 보이는데 누룩을 찾기는 어렵다. 할머니의 엄마는 자주 막걸리를 양조했다고, 우리 할머니가 말했다. 그땐 작은 양의 누룩 정도는 이웃에게 빌려 쓰지 않았을까. 빵을 구우려는 사람이 잘 키운 천연발효종을 나눔질하는 사람에게 전달 받는 걸 보며 멋대로 상상해본다.
한번 물수제비를 뜨면 얼마간 파장이 이어질지 모른다. 처음으로 빚은 삼양주를 아끼는 사람들과 마셨다. 맛있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은 난 연인과 함께 ‘맥주 홈브루잉' 대회에 출품할 맥주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는 맥주를 만들기 전에 원하는 맛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재료와 레시피를 정리했다. 벨지안 스타일 맥주를 만들 때 쓰는 효모와 맥아, 홉, 건조한 청귤 껍질을 넣은 첫 번째 버전의 맥주를 완성하기 위해 가지각색의 1맥주 레시피가 있는 저장소 같은 웹사이트에서 적절해 보이는 양조법을 찾아 읽었다. 어떤 재료를 넣는지, 얼마나 계량하는지, 몇 도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숫자와 글자를 읽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은 시원하게 배제한 기록을 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몸으로 부딪쳐 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게 요리의 세계인가.
레시피는 그래야겠지?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시소처럼 천천히 마음이 기울었다. 맥주를 만들려면 체계적인 주방이 필요했다. 양조 공간을 대여해 마녀가 된 기분으로 거대한 스테인리스 통에 여러 종류의 맥아를 물에 넣고 팔팔 끓였다. 그냥 보리보다 오동통한 맥아에서 당분이 빠져나오고, 집에서 식혜를 만들 때 나는 냄새가 지하에 퍼졌다. 바로 옆 화구를 사용할 예정인 다른 팀은 양조에 사용할 용품을 모으며 준비에 한창이었다.
양조할 땐 찌개를 끓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절차가 중요하다. 다 된 찌개에 액젓을 넣지 않았을 땐 ‘아차, 이제라도 넣어야겠다.’ 할 수 있겠지만 술을 빚을 땐 안 된다. 레시피를 정석대로 따라가 보는 건 나와는 안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즐겁다. 일단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실수를 하면 20L나 될 술을 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조리 과정을 달달 외웠다.
우리는 양조한 결과물을 방만한 냉장창고에 집어넣었다. 새큼하고도 구수한 냄새를 맡으려고 잠시 술의 공간에서 머물렀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술이 뿜는 각기 다른 에스테르를 옷에 묻히고 주방을 빠져나왔다.
맥주 발효가 끝난 후에는 병입을 한다. 이때 당연히 갓 만든 맥주를 따라내어 맛을 보는데 입술에 액체가 닿기 전 설레는 마음은 맛만큼이나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부상으로 책 『How to brew』를 받고 남은 맥주는 친구들과 마셔버렸다.
마음에 드는 요리를 완성하면 아끼는 다이어리에 기록한다.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다음에도 똑같이 구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절차를 적는다. 머릿속에 나사 없는 도안을 그려나가는 거다.
취나물 솥 밥 레시피
- 건 취나물을 적당히 물에 불려 부들부들한 상태로 만든다.
- 건 취나물에 간장, 들기름을 각각 한 숟가락 넣고 섞는다.
- 양념한 건 취나물을 넣고 밥을 짓는다.
글 쓰는 당시엔 최선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적은 이 기록은 몇 년만 지나면 독자를 고심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난 조리법을 차근히 읽으며 요리한다. 기록에 완전히 의존하기보다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설렁설렁 메워본다. 땅에서 자라나는 풀을 냅둬본다.

